차문은 신라 고려조에 수많은 문무장상(文武將相) 이 대(代)를 이어 배출된 명문이다. 고려 공민왕(恭民王) 때에 군부판서(軍簿判書) 차포온(車蒲溫) 용산군(龍山君)은 려조가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때에 국방 및 외교로 뛰어난 활약을 하신 려조의 명신(名臣)이며 차문의 현조이시다. 또 불의에 굴하지 않았던 려말의 성리학의 대가이시며 려조 간의대부(諫議大夫)이신 운암공(雲巖公) 차원부(車原頫)께서 조선개국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와 하륜(河崙)등 사얼(四孼)들의 모략으로 억울하게 추살(椎殺) 되시고 차씨 일족은 적족지화(赤族之禍)를 당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태조(李太祖)의 질책(質責)으로 태종이 잘못을 뉘우치고 공의 영혼을 위로하는 치제(致祭)를 명하고 아울러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으로 추증하고 그 후 세종대왕(世宗大王)이 문절(文節)이란 시호를 내리고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가증하였다. 다행히 단종(端宗)의 명으로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외 5인의 기문(記文)과 유신석학(儒臣碩學) 44인(河緯地,朴彭年,崔恒,申叔舟,成三問,李石亨,柳誠源,姜希顔,兪鎭,姜孟卿,鄭麟趾,李禮長,李塏,權擥,李克培,李克堪,李克增,李克均,李陸,梁誠之,盧思愼,黃守身,金國光,尹弼商,魚世謙,李季甸,洪應,徐居正,權攀李怒長,尹子雲,韓確,姜希孟,具致寬,鄭昌孫,元孝然,李叔瑊,沈澮,韓繼禧,朴元亨,洪澾孫,李諴長,李叔琦,尹士勻)의 응제시(應製詩)를 모아 세조(世祖) 2년에 예조참판(禮曹參判)의 하위지(河緯地)가 서문을 지어 차운암선생(車雲巖先生) 설원기(雪寃記)를 만들어 세조에 받치니 이에 억울한 사실이 소명은 되였으나 차씨의 수난은 계속 되였다. 세조 13년에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해 공을 세우고 순절하신 강열공(剛烈公) 차운혁(車云革) 임진난(壬辰亂)에 평양성(平壤城)의 로포문(露布文)으로 명나라를 놀라게 한 천하문장(天下文章) 오산공(五山公) 차천로(車天輅) 또 임진난에 창의(倡義)하여 왜적을 물리친 삼의사(三義士) 차응인(車應麟) 차덕도(車德道) 차덕홍(車德弘)등과 같은 명조현조님들이 많이계셨다.